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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그날의 횃불, 진주에서 다시 밝혀져
진주시 제공

 기미년(1919년) 3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 시작된 3·1운동은 3월과 4월에 걸쳐 진주로 이어졌다.

 진주의 3·1운동은 당시 기득권층, 양민은 물론이고 걸인과 기생까지 나서 대한독립을 외쳤다. 이해에는 대한민국입시정부가 수립되기도 했다.

 지난 17일에는 경남지역에서 유일하게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독립의 횃불 전국릴레이'행사를 맞아 진주시 중앙동 차없는 거리 일원에서 시민들이 그때처럼 독립만세를 외쳤다.  

 '독립의 횃불 전국릴레이'횃불 봉송에는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들,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역군들, 대한민국 미래의 희망이라는 세 가지 테마로 100명의 주자들이 참여했다. 이들 중에는 독립유공자 유족 10명과 온라인 국민공모 주자 9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또, 진주지역에서 3·1운동을 기념하는 독자적인 행사도 열렸다. 진주문화사랑 모임은  '진주 걸인·기생 독립단 만세운동'을 테마로 재현행사를 진주시의 지원을 받아 청소년수련관 앞에서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걸인이 일어났소, 기생이 일어났소> 공연이 있었고, 걸인·기생으로 분장한 1000여 명의 학생 시민들이 직접 횃불과 태극기·깃발을 앞세우고 영남포정사까지 횃불행진과 만세삼창을 불렀다.

 한편, 진주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과 4월에 걸쳐 전개되었다. 1919년 2월 말에 고종의 국장에 참례하기 위하여 서울에 갔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한 김재화(金在華)·정용길(鄭鎔吉)·심두섭(沈斗燮) 등은 이강우(李康雨)·권채근(權采根)·강달룡(姜達龍) 등과 진주 지역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3월 18일 당시 진주면의 장날을 기하여 거사하기로 계획하고 3월 10일경 독립선언서와 시위 참여를 촉구하는 교유문(敎喩文)을 작성하여 비밀리에 배포하였다.

조권래 기자  edit06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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