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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래 - 진주성 이야기 2) 동문의 복원을 희망하며

 지난달 21일 통과된 진주시 2018년도 제2차 추경예산에는 진주성 남문과 동문 복원을 위한 타당성조사 용역비 3천만 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진주시의 발전을 위해서는 역사문화도시를 지향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뜻을 일부라도 진주시가 수용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남문 터는 지금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광장 예정지의 동북쪽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옆 진주교 다리목 사거리 지하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발굴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현재까지 남문 터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없다.) 그렇다면 남문의 복원은 당분간 어렵다고 판단한다. 중요 교통로를 차단하면서까지 복원하려는 것은 시민들의 동의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동문은 사정이 다르다. 장대동 어린이놀이터에서 서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주택가에 위치한 것으로 판단되는 동문은 정확한 위치를 찾기만 하면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그 일대를 사들이고 발굴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들고 시간이 걸릴 것이다.

 동문을 복원한다는 것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의 현장을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바로 이곳 성문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1차 진주성전투(진주대첩)에서 김시민 장군이 이곳에서 왜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군사를 지휘하다 흉탄에 맞아 부상을 입고 승전 후 8일 만에 순국했으며, 이듬해 2차 전투에서는 황진 장군(충청도 병마절도사)도 역시 이곳에서 전투를 지휘하다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두 장군과 함께 많은 군, 관, 민이 이곳에서 희생되었고, 왜군도 이곳을 돌파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우리보다 더 큰 댓가를 치렀다. 가히 동문 부근은 임진왜란 기간 중 전국 최대의 격전장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동문의 복원 가능성이 보이면서 나는 몇 가지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 하나는, 복원된 동문으로 매일 나가서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이 원한다면 진주성 전투 당시 상황을 이야기를 해드리는 것이다. 왜군의 포진과 아군의 대비 상황, 사용된 무기의 종류, 왜군이 사용한 여러가지 공성 방법과 아군의 대응 등을 설명 드리고 싶은 소망이 있다.

 또 하나는, 1차 전투(진주대첩) 승전일인 11월 13일(왜군을 물리친 1592년 음력 10월10일은 양력으로 환산하면 11월 13일이다.)에 이곳에서 진주대첩 승전 기념식을 여는 것이다. 진주시가 하지 않아도 좋다. 뜻있는 시민들이 모여 조촐하게나마 진주성에서 산화하신 선조들의 영령을 기리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

 덧붙여서, 동문이 복원된다면 현재 진주성 내에 세워진 김시민 장군의 동상을 이곳으로 옮길 것을 희망한다. 이곳은 김시민 장군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으로 그의 숨결과 목소리가 울려 퍼진 역사의 현장이다. 장군이 왜적을 막기 위해 마지막 온 힘을 쏟았던 곳인 만큼, 이곳 이상 동상이 서 있을 수 있는 적합한 곳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말없이 두 눈을 부릅뜨고 동문과 건너편 왜군 진영을 바라보고 있는 장군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서, 부디 나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조창래대표는 '역사진주시민모임 공동대표, 진주참여연대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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