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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래 진주성이야기) 유등축제장 격전지와 임진왜란 격전지는 다르다.유등축제장 재현된 전투장은 흥미로만 봐줬으면......

 지금 시내 진주성과 남강 주변에는 10월 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곳곳에 유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손님 맞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내 눈길를 끄는 것은 성의 동북쪽에 설치된 진주성 전투 재현 장면이다. 시설물(유등인데 땅에 설치했으니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딱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은 상당히 잘 만든 것 같다. 성 아래 언덕에서 위를 바라보며 성을 공격하고 있는 왜군의 모습과 성 위에서 이를 방어하고 있는 진주 관군의 모습이 리얼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한 순간 ‘이곳은 진주성 전투의 격전지가 아닌데?’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사실을 잘 모르는 시민들이나 축제 기간에 진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이곳을 진주성 전투의 현장으로 잘못 알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현재의 진주성은 1592년에 일어난 왜란 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성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성은 왜란 이후, 국가 차원에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을 다시 짜면서 진주의 중요성을 감안한 가운데, 1603년 창원에 있던 경상우병영을 진주로 이전하면서 다시 쌓은 성이다. 경상우병영을 옮길 당시 왜란 때의 교훈을 되새겨 외성과 내성의 이중 방어벽을 구축했다. 그러면서 외성은 방어하기 좋도록 과거보다 높은 곳으로 옮겨서 축소하여 쌓았고, 만약을 대비하여 외성의 방어벽이 뚫리면 2차 방어선을 확보하기 위해 내성을 함께 쌓았던 것이다.

 실제로 1591년 왜란 1년 전에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넓혀 쌓은 성은 성벽이 저지대까지 내려가 있어서 1592년 10월의 1차 전투(진주대첩) 때는 방어에 애를 먹었고, 이듬해 2차 전투(계사년 6월) 때는 결국 동쪽 성벽이 무너지면서 방어력이 약화되어 함락의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는 지금의 장대동 어린이 놀이터 서북 쪽 으로 조금 떨어진 어느 지점에 있었다고 알려진 동문 부근에서부터 타원형으로 휘면서 지금의 중앙시장 남쪽 일부를 거쳐서 중앙광장 동북 쪽에 있는 중소기업은행 부근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신북문으로 이어진 성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동문 부근이 최대의 격전지였다.

 진주시가 유등축제 방문객의 흥미를 끌기위해 설치한 진주성 전투의 재현 모습은 방문객들에게 진주성 전투를 잘못 인식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 시키면서 이것을 어디까지나 흥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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